며칠전부터 잠들기 전과 시간 날때마다 본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챌린저: 마지막비행의 리뷰를 써본다. 최근 우주, 별 등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넷플릭스에 NASA를 검색했던 것 같다. 그랬더니 이 다큐멘터리가 뜨길래 보기시작했다. 줄거리내용이 다 포함되어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1986년 1월 28일.
나사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되었다.
아주 맑고 엄청 추운 날, 휴스턴의 케네디스페이스 센터에서.
It was a beautiful, crazy cold day.
발사가 시작되고 별다른 문제가 없어보였지만, 73초 후, 최대화력으로 전환하자마자 모두의 눈앞에서 챌린저호가 폭발해버린다.
챌린저호에는 총 7명이 탑승해있었다. 7명의 탑승자의 가족들을 포함해 TV로 챌린저호 발사중계를 보던 사람들, 나사 직원들 등 모두가 충격에 잠긴다.
처음 폭발이 되고나서 사람들은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나쁜일이 일어난 것인지, 원래 이런 폭발이 있는 것인지 조차 판단할 수 없던 상태였다.
결국 7명의 탑승자는 그대로 사망한다.
바다로 떨어진 챌린저호의 잔해를 수색을 하다가 다행히 그들의 시신도 찾는데에 성공하지만 이미 모두 사망한 뒤였다.
챌린저호가 미국 나사의 첫번째 우수비행선은 아니다.
이미 챌린저 호 전에 몇차례의 성공적인 우주왕복선 운행을 해온 상태였다. 하지만 챌린저호가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을 많이 받은 이유는 챌린저호에 탑승한 아름다운 7명의 사람들 때문이다.
7명은 나사의 5명의 우주인, 인공위성제조사의 스페셜리스트 한명, 초등학교 교사인 크리스타였다.
특히 크리스타는 최초로 우주에 가는 일반인으로 뽑힌 사람이다.
미국 나사는 우주왕복선의 비행이 성공적으로 이어지면서 대중들의 관심이 줄어들자 일반인을 우주에 보내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아무래도 대중들의 관심이 있어야 정부나 기관 등으로부터 예산, 투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사의 가장 큰 힘은 대중의 관심이라고 한다.
의사, 나사 직원, 엔지니어가 아닌 진짜 일반인 중에 상징적인 인물을 뽑으려는 의도로 교사 중 한 명을 뽑기로 했고, 최종 선발된 사람이 바로 크리스타였다.
그리고 크리스타는 교사이자 여성이자 아이들의 엄마였다.
추가로 탑승자 7명 중에는 최초의 흑인도 있었고, 동양계의 사람도 있었다.
이런 이유들로 사람들은 챌린저 호의 발사를 더욱 기대하며 지켜봤다.
다큐는 총 4편이다.
정말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이 우주선 폭발사건과 관련해 나사직원, 나사직원의 가족, 언론사 기자, 그 외 관련자들, 일반인 우주인 선발에 지원했던 지원자, 희생자 가족들의 증언, 보관 영상 등으로 다큐멘터리가 채워진다.
이 다큐시리즈는 나사의 스페이스셔틀, 즉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간략히 말해준다.
1972년 우주왕복선의 역사가 시작되는데, 2011년에 나사는 더이상 우주왕복선을 운행하지 않기로 한다.
133번의 성공적인 우주비행이 있었고, 2번의 실패가 있었다고한다. 두번 모두 탐사선이 파괴되었고, 탑승했던 사람들은 사망했다.
2번의 실패 중 하나가 바로 이 다큐의 챌린저호이고, 나머지하나는 콜롬비아호이다. 콜롬비아호는 2003년에 지구로 돌아오다가 파괴되었다. 7명씩 총 14명이 희생되었다.
희생이라고 표현을 하는 이유는 이 두 사건모두 예견된 인재였기 때문이다.
챌린저호의 폭발사고 이후 청문회가 열렸다.
미국정부는 이 사건의 원인이 나사의 탓이 아닌 것으로 사건을 덮으려고 했다.
하지만 사고의 원인은 크게 두가지였다.
O링의 복원력의 문제와 그로인해 사고의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무리하게 발사를 하도록 결정한 나사의 잘못된 의사결정이다.
챌린저호의 발사는 몇차례 연기가 되었다고 한다.
우주선의 발사는 날씨, 온도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지연이 되고 있었는데, 나사의 관계자와 기술자들이 모여 회의를 연 후, 챌린저호의 발사가 결정이된다.
그리고 충격과 비극의 폭발사고가 벌어진다.
날씨가 너무 추운경우 모터의 O링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전부터 고체로켓 부스터 기술자들은 부스터에 문제가 있다고 얘기해왔다고 한다.
마지막 발사 회의에서도 기술자들은 발사를 반대했지만, 결정권자는 발사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당시 나사는 기한내에 발사를 해야하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당시 발사결정을 내린 실제인물은 발전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일 뿐이라는 듯 말을 한다.
해야만했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희생자들의 가족들 뿐 아니라 챌린저호와 관련된 기술자들도 이 사건은 인재라고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니 인재였다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눈 앞에서 나의 딸, 아들, 남편, 부인, 엄마, 아빠, 친구, 동생이 폭발로 사라지는 것을 본 사람들의 그 충격과 슬픔이 전해져서 울면서 봤다.
우주선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나사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재밌지만, 우주선은 위험하다는 것, 그 위험을 감수하고 우주에 가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당장 내일 우주에 갈 수 있다면 나는 가겠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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